휴일이라고 해도 마땅히 다른 할 일도 없던 터라 클럽 스톰을 찾았다. 흥겨움을 돋우는 시끄러운 DJ의 음악이나 노출이 가득한 여성의 옷차림 등에도 시선이 갔지만 지금 가장 자신의 관심을 끄는 인물은 따로 있었다.
‘윤형조 이사?’
비교적 사람이 별로 없는 클럽 복도 한쪽에 형조가 진지한 얼굴로 바닥을 보고 있었다. 멀리 2층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현이 흥미를 가지고 좀 더 그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뭘 보고 있는 걸까하고 형조의 시선을 따라 바닥을 보니 분홍색의 조그마한 물건하나가 반짝였는데 고양이 모양의 열쇠고리인 듯 했다. 클럽에 오는 여자 손님 중에 누가 떨어뜨린 것일까, 그런데 저걸 왜 저렇게 보고 있는 거지?
‘아, 설마 갖고 싶은데 줍기를 망설이는 건가?’
느낌이 그런 게 아닐까 싶었지만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도 그럴게...
‘저 덩치에 안 어울리게 저런 걸 좋아할 리가 없... 어?’
현이가 자조적으로 그럴 일없다고 생각하는 찰나 형조가 슬쩍 주위를 살피더니 아무렇지 않게 떨어진 분홍색 고양이를 주워서 가는 게 아닌가. 눈앞의 믿기 힘든 광경에 작은 충격을 먹고서는 멍해졌다. 천천히 형조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번뜩 정신을 차리자마자 현이의 입에서 푸흡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푸흐흡... 아하하하!”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로 그걸 신경 쓰며 주워갈 줄이야! 너무나 의외인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저런 걸 좋아하는 걸까? 형조의 겉모습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물건이라 오히려 그 갭 때문에 더 귀엽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다가기도 힘든 사람인데 말이지.’
같은 남자가 봐도 동경스러울 만큼 멋있는 남자가 윤형조 이사였다. 단순히 마초적인 남자다움의 매력 때문에 끌린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윤형조 이사에게는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윤형조 이사는 남들에게 ‘이 사람이라면 내 모든 걸 믿고 의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정확히 그걸 뭐라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일이 닥쳐와도 겁이 나진 않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적어도 써먹히고 버려질 것 같진 않아서 그런가.’
하지만 그 생각도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확신이나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그의 기백은 높이 사지만 백퍼센트 그 사람을 신뢰할 만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잠시 다른 생각으로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현이 꾸욱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서는 허리를 곧게 폈다.
“그보다 진짜 저걸 가지고 간 건지나 확인해 볼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나 착하게 쓰레기통에 버리기 위해서 주웠다던가하는 그런 만일의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뭐, 그건 그거대로 귀여울 것 같네.’
윤형조 이사가 열쇠고리를 주워버린 시점에서 이미 현이의 마음속에 윤형조 이사는 귀여운 사람이 되어버린 듯 했다. 즐거운 기색이 가득한 미소가 현의 입 꼬리를 따라 길게 올라갔다.
며칠 뒤, 클럽 스톰을 다시 찾아 때를 기다리며 오른손에 쥔 파란색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렸다. 드디어 멀지 않은 곳에서 윤형조 이사의 모습이 보였고 좀 더 그가 자신의 앞으로 비켜갈 때쯤 현이 앞에 얘기를 나누던 직원에게 오른손 손가락에 끼어진 파란색 열쇠고리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참, 혹시 이거 분홍색 보셨습니까? 커플 열쇠고리인데 아무래도 저쪽 1층 복도쯤에서 잊어버린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네요.”
“열쇠고리? 글쎄, 그런 거는 전혀 못 봤는데. 언제쯤 잊어버렸는데?”
“이틀 전쯤이요.”
“야, 인마! 여기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드나드는데 그게 아직까지 남아있겠냐? 벌써 누가 주워갔던가 아니면 청소하는 사람이 담아서 버렸겠지. 이틀 전에 여기서 잃어버렸으면 더는 못 찾아. 못 찾아.”
직원이 손 사례를 치며 찾는 건 포기하라며 고개를 저었다. 직원과 대화를 하면서도 현은 지나가다 조심스레 멈춰선 윤형조 이사의 행동을 의식하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어딘가 묘하게 당황한 듯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 확실히 평소의 윤형조 이사답지는 않았다. 자신과 직원이 하는 대화를 전부 들었으려나? 자신이 들고 있는 열쇠고리를 쳐다보는 윤형조 이사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보였다. 예상과 맞아 들어가는 윤형조 이사의 반응에 즐거워진 현이 한쪽 입 꼬리가 씩 올라가려는 것을 꾹 참고서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껏 실망한 표정을 연기하며 말했다.
“간만에 정말 마음에 들었던 건데.......”
현이의 한숨 섞인 그 말에 듣고 있던 윤형조 이사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얼굴은 곤란한 듯 보였다. 자꾸만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숨기기 위해 한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고개를 돌렸다. 현이의 기가 막힌 연기에 속아 넘어간 사람은 윤형조 이사뿐만 아니라 앞에 있는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서는 말했다.
“사내자식이 그런 열쇠고리 하나 잃어버렸다고 무슨 나라 잃은 표정하고 지랄이야.”
“사람마다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염병 떨 생각이면 우리 일이나 좀 도와주고 가던가.”
“하하, 뭐 도와드릴게 있어요?”
“무대장비 정리할 게 있어서 몇 명 힘 좀 써야한다고 하던데 좀 도와주라.”
“네. 그러죠.”
앞장서는 직원의 뒤를 따라 현이 움직이자 그제야 멈춰서 있던 윤형조 이사도 발걸음을 뗐다. 곁눈질로 그의 모습을 지켜본 현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70%? 아니, 80%이상 그 열쇠고리 아직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원하는 건 미완의 예측이 아니라 100% 확신이거든.”
“엉? 뭐라 그랬냐?”
작은 소리였는데도 밝은 직원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렸는지 현이를 올려보며 물었다. 고개를 저은 현이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어서 가죠.”
“그래, 오늘 일 도와주면 그래도 수당은 받을 수 있게 위에 말해줄게.”
대답 대신 속 좋게 웃어 보이는 현이를 보며 가는 길에 직원이 수다를 늘어놓았다. 별 쓸모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현의 성격상 그의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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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부탁받은 일을 끝내고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으러 캐비넷을 열어 저친 현은 그 자리에서 그만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캐비넷 안에 그것도 가장 잘 보이는 앞쪽 정 가운데에 떡하니 분홍색 고양이 열쇠고리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냐고 묻지 않아도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윤형조 이사. 정말 귀여워 죽겠네.’
놓여있는 분홍색 열쇠고리를 손에 든 현이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